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카모토 류이치 (문단 편집) == 다른 아티스트와의 관계 == *[[호소노 하루오미]] 5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만 동료 이상으로 친하다. 물론 풍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호소노 하루오미의 앨범 중에는 사카모토가 세션으로 참여했었던 앨범이 많았고, YMO 초기에도 호소노의 명성을 빌려[* '해리 호소노와 옐로 매직 밴드'나 '호소노 하루오미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등의 명의를 썼다.] 활동했었던 만큼 사카모토의 초기 명성 증대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YMO 시절 타카하시 유키히로의 중재에도 불구, 장기간 반목하며 해산했지만 각자의 경력을 쌓던 십여년의 기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만남을 이어나갔다. 이후 호소노 하루오미는 그 시절의 류이치를 두고 '파더 콤플렉스'라며 다섯 살 많은 본인에게 억눌린 자아를 해소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소감을 남겼으며 사카모토 류이치는 그때의 자신을 만난다면 '두들겨 패주고 싶을 것이다'라며 간단한 회고. 호소노 하루오미는 사카모토 류이치 사후 본인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류이치는 몇 년에 걸쳐 준비를 하고 영면했으며, 본인이나 가족도 후회없이 떠났기 때문에... 저도 그걸 알고 난 후에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라며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 [[타카하시 유키히로]] 동년배이지만 생일로 치면 사카모토가 5개월 빨리 태어났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정규 1집 앨범 의 앨범 자켓 디자인과 코디네이팅은 물론 초기 작품 전체의 드럼으로 참여를 줄곧 해왔다. [* 사카모토 류이치의 Self-Portrait 역시 다카하시의 드럼.] 상술했듯 둘은 막역한 사이로 보여져왔는데, 지난 2023년 1월 14일 사망했다. 2020년 8월 심한 편두통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여기서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몇차례의 수술과 재발을 반복해왔고, 최근까지 활동을 중지한 채로 요양중이었다. [*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사망 직전 부쩍 마른 모습, 그리고 그의 요양 생활을 함께 해온 아내 키요미 다카하시의 사진이 올라와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정규 앨범으로 보고 있는 <12>가 그의 생일인 1월 17일에 발매되었는데, 정식 발매가 되기 며칠전에 다카하시 유키히로가 사망하면서 큰 상실감에 빠진것으로 알려져있다. * [[야마시타 타츠로]] [[시티팝]]의 거장 야마시타 타츠로가 아주 선호한 키보디스트 셋(사토 히로시, 사카모토 류이치, 히로유키 남바)중 1인. 타츠로의 고평가되는 앨범인 [[SPACY]](1977) 활동기 및 커리어 초창기에 사카모토가 라이브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어려울 때 세션을 많이 해준 덕인지 타츠로 이 양반도 사카모토의 정식 데뷔앨범을 포함해 많은 앨범에 참여했다. * 야노 아키코 전 부인.YMO 세션을 많이 도와준 덕인지 자신도 도움을 많이 받고 결혼까지 했으나 야노의 종교 문제로 별거에 돌입, 사카모토는 이후 지금의 아내인 노리카 소라와 함께 살면서 두명의 아들을 낳았다. (최근 유산 상속 문제로 노리카 소라와 그의 아들들이 이제서야 사카모토 류이치의 법적인 가족으로 등기되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WORLD HAPPINESS 페스티벌에서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야노 아키코가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호소노 하루오미등과는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후문.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표곡 의 퍼블리싱을 야노 아키코의 회사에서 현재까지도 관리하고 있다. 수익 배분 비율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때문인지 실제로 이들이 법률상 이혼이 확정시 된 것 시점이 2006년 무렵이었다.(야노 아키코와는 80년대 후반 별거에 들어갔고, 그 전부터 사카모토 류이치는 현재의 아내인 노리카 소라와 동거 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낳아 지금의 가정을 이루었다.) 당시 이렇게 오랜 시간 재판을 조정해온 가장 큰 원인으로 의 저작권 이전 문제로 보고 있는 해석이 많았다. * [[오오누키 타에코]] 대학 시절부터 오랜 친구로 야마시타 타츠로, 새디스틱 미카 밴드의 다카나카 마사요시등과 자취방에서 우동을 만들어 먹으며 곡 작업도 하는 등 동고동락을 해온 절친으로 데뷔 시절 세션을 많이 도와주는 등 사카모토 류이치는 오오누키의 작품성향을 만드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 그래서 사카모토가 어려워 하는 뮤지션이면서 동시에 사카모토에게 조언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뮤지션 중 한명이다. 2010년 무렵 사카모토 류이치의 곡에 오오누키 다에코가 가사를 붙여 완성한 앨범 가 발매되었고 또 2023년 3월, RADIO SAKAMOTO의 마지막 방송을 그녀에게 일임했다. * [[스즈키 시게루]] 호소노 하루오미의 소개로 1978년부터 키보드를 쳐주었고 그당시 앨범들을 보면 수준급이라고 한다. * [[타카나카 마사요시]] 타카하시 유키히로가 속했던 [[사디스틱 미카 밴드]]의 기타리스트. YMO의 1집 기타 레코딩에 참여하는 등의 교류를 했다. 사카모토 류이치 또한 타카나카 마사요시의 앨범인 JUNGLE JANE, Ballade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 김덕수 사카모토 류이치와 TBS가 함께한 "ZERO 지뢰폭탄 제거 프로젝트 "에서 사실상 처음 협연했다. 인연은 그 이전부터 있어온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 김덕수와는 영화 <남한산성>에서 다시 협연했다. 특히 한국 전통 악기 (북, 장고등)과 판소리가 가능한 여성 보컬이 필요로 했는데 당시 김덕수가 그와 함께 해온 제자, 동료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래서 당시 남한산성의 사운드트랙 마감을 위해 사카모토 류이치는 비공개로 한국에 방문했다. 녹음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 성신여대 캠퍼스에 소속된 Red Brick Wall에서 진행됐다. 사적으로도 오랜 시간 친분이 있어 한국에 방문하면 꼭 만나고 가는 지인이며, 가족끼리도 친해서 매번 만날때마다 김덕수의 아내분이 직접 김치를 만들어 선물한다고. * 정재일 2000년 초반 서울 혜화동에서 처음 만난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카모토 류이치와 TBS가 함께한 "ZERO 지뢰폭탄 제거 프로젝트 "를 위해 김덕수와의 레코딩 당시 김덕수가 소개해 준것으로 알려져있는데 확실치는 않다. 하지만 정재일이 어린시절부터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구사해왔기 때문에 (현대음악은 물론 국악에도 재능이 높아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립극장에서도 자주 공연을 올리고 있다.) 당시 김덕수는 물론 음악계 어른들 사이에서 눈여겨 보는 젊은 재목으로 유명했다. 이후 2018년 PIKNIC 개관 전시를 진행하면서 홍보성 기사로 정재일과 함께한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17년만에 조우했다.잇뮤직크리에이티브측에 따르면 사카모토 류이치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았으며, 본 영화의 음악 역시 정재일이 맡았다는 것을 알고 무척 감동했다고 말했다고. * [[MC 스나이퍼]] 2003년경 MC 스나이퍼가 사카모토에게 The Sheltering Sky의 샘플링 허락을 직접 맡았고, 그 곡을 샘플링하여 MC 스나이퍼는 자신의 2집 앨범 수록곡 Baby don't cry를 작곡하였다. 그 외에도 사카모토와 함께 1개월 동안 일본 현지에서 공연과 같은 음악적 활동을 하였으며[[https://www.youtube.com/watch?v=OyM92tjRJA0|#]] [[https://www.youtube.com/watch?v=WYyLxjJBgK8|##]], 직접 사카모토의 녹음실에 소주를 보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이때 사카모토의 매니저는 더이상 소주를 선생님 녹음실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유는 사카모토가 소주를 먹고 항상 녹음실에서 잔다고… * [[슈가(방탄소년단)]] 2022년 9월 슈가의 바람으로 비공개 만남을 가졌다. 슈가는 인스타그램에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연주한 곡을 올리는 등 팬심을 드러내오기도 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때의 만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니 교만함이 없는 청년으로 음악 활동에 매우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421/0006722572|국내기사]] 사카모토 류이치 별세 시에 슈가는 SNS에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